带着瞻仰世界三大元帅之首李舜臣上将军指挥世界四大海战之一的闲山海战之神迹的心情看了这部影片。
虽然逻辑、史实、主题方面可能连盗版读本儿歌三百首都不如,但是论水战的画面效果及剧情的流畅性还远不是上、下赤壁这两坨翔能碰瓷的。
不提机器人一样的男主肩上镶的那两条金龙有多离谱了(别跟我说是充电口),我就想问就凭女主这点姿色你是怎么设计出让身为敌军主将的大boss对她私定终身、处处留情,就算被物理扎心也要一舔到底的剧情的?
你凭什么?!
得亏是氛围不合适,不然我丝毫不怀疑您借机秀一把朝鲜军团欧巴们的无上魅力,安排他们将倭军女眷乃至猴王亲女个个迷得神魂颠倒、欲仙欲死,以至其前赴后继地穿过倭奴男人们的重重封锁将情报送入男神们的怀中。
This safeguarded Ming to the West and reversed the tide of war.一如既往,脸可真大啊!
电影主要讲的是明朝时日本倭寇侵略朝鲜的海战。
历史上日本至少有3次进攻中国。
分别是唐朝,薛仁贵东征保唐。
明朝,戚继光抗击倭寇。
再就是近代,日本侵华战争。
朝鲜地理位置上看是一个大陆板块的一个口子,要攻击中国,就必须先打下朝鲜!
日本这个国家总想打下亚洲,统一地球。
一次一次的侵略其它国家,这部电影刚好反应了一次反侵略的海战,朝鲜人民奋起反击!
中国跟朝鲜的关系一直都还好,历史上总是联合起来抗击外敌。
没有发生朝鲜联合其它国家里应外合拿下中国,然后再分些地盘的事!
不知道到了现代,朝鲜分裂成南韩北朝后会怎么样?
谈谈男一号的面瘫表演法,会不会成为本片的一大败笔。
上一部同类型的《 鸣梁海战 》 的主演崔岷植,表演就好很多了。
站在闲山岛的戍楼上放眼望去,一片广阔的海域直达天际,大朵大朵的白云铺满了天空,阳光穿过云隙,在湛蓝的海水上投下万道金光。
是日天朗气清,风轻浪细,最适合渔民出海捕鱼。
但极目之处片帆不见,岸边更是空无一人,一切都异常地静谧。
突然,许多黑点自远处迅速扑来,仿佛从天而降。
黑点越来越大,过不了一会,便能隐约看出是倭国战船的轮廓。
只是这倭国战船数量竟达数百艘,劈波斩浪,气势汹汹。
就在此时,近水海域也驶出了数十艘朝鲜战舰,严以待阵,战舰上的旗帜清晰地印着一个李字。
虽然敌众我寡,但这支舰队并没有避其锋芒,而是在原地一字铺开,等着敌船靠近。
这正是埋伏在闲山岛附近的李舜臣水师精锐。
正中间的战船中,6名手持盾牌的士兵紧紧护着李舜臣,其他士兵则低身伏在甲板,等待号令。
尽管周围铁炮声不绝于耳,前侧的盾牌已满布弹孔,李舜臣始终泰山般站立在甲板上,仔细观察战局的变化,右手紧紧握着刀柄,一刻也未松懈。
“将军,掉头吧,敌船越来越近了”旁边的副将焦急万分,黄豆般大的汗水沿着脖颈而下,浸湿了铠甲里的罩衫。
“再等等,鹤翼阵刚刚摆好,必须让敌船全部入网”。
副将看着不远处敌舰甲板上的倭寇们已准备好绳索挂梯,只待一靠近便要登船,更是无法耐下心来继续等待,但转脸看到李将军如水般的面色和自信坚毅的眼神,到了嘴边的话又吞了下去。
敌船距离只有几十米了,再不变阵就来不及了。
副将的心已经跳到了嗓子眼上,正要再次劝说李舜臣时,只听到一声“变阵”,李舜臣声若洪钟,旗手和鼓手们接收到李将军的指示,开始向其他船只发放信号。
一字排开的朝鲜战船以最快的速度向同一侧调转船头,直至首尾相连。
此时,倭船已近在咫尺,倭寇们将带有钩子的绳索抛进了朝鲜战船中,争先恐后地架起梯子开始登船。
“开炮“,李舜臣的号令像是士兵们身体内的条件反射,刹那间朝鲜战舰百炮齐发。
炮手们娴熟地填弹、瞄准、点火,由于距离太近,一颗颗炮弹尽数击中包围圈内的倭国战船,一时间,樯橹灰飞烟灭,倭寇人仰马翻,落水者更不计其数。
不知不觉已近傍晚,海面又恢复了平静,只剩下破碎的倭国战船残躯在海面上游荡。
李舜臣仍然面色如水,若不是铠甲上的血渍和刀刃上的缺口,根本看不出他刚刚经历了一场鏖战。
朝鲜士兵忙着打扫战场,盘点伤亡和损耗。
李舜臣吩咐完手下的将士们,便转身望向闲山岛,如炬的眼神变得柔和起来。
不远处,几只海鸟一会儿在海面上滑翔,嬉戏玩耍,一会儿落在浅滩上悠闲的踱步,寻找食物。
若是没有战争,闲山岛的百姓们岂不也正在快乐地鱼猎和生活吗。
李舜臣的脸上露出了一丝笑容,仅仅一刹那,便又收回了笑容。
看着士兵们脸上洋溢着胜利的喜悦,李舜臣向副将发出指示”传命下去,抓紧修整,随时准备下一场战斗“。
随后,转身离开了甲板。
2022韩国动作片《闲山:龙的出现》,根据真实事件改编,豆瓣评分6.4,IMDb评分6.7。
本片是2018韩国海战片《鸣梁海战》的前传,讲述年轻时代李舜臣对抗日寇的故事。
只是时间线在《鸣梁海战》之前,故事内容和《鸣梁海战》没有关联。
没看过《鸣梁海战》也没有影响,可以作为独立电影观看。
作为海战片,CG特效肯定比重很大,可惜虽然与《鸣梁海战》时隔4年,但是CG水准提升不大,细节不真实,有明显的模型感觉,有明显的动画感觉,这一点在《鸣梁海战》就有所体现,没想到4年后的2022年仍然如此,显然是投资不够。
最糟糕的是年轻李舜臣的饰演者朴海日的表演,角色塑造一塌糊涂,他为了塑造李舜臣的沉稳和老练,全片面无表情一个样,台词没几句,似乎演员认为只有这样才能衬托出李舜臣的沉稳和老练。
面无表情到三棒子打不出一个屁的憋气程度,让人看着想发火,越看越闹心。
韩国反派混混专业户朴智焕在片中饰演了造船官兵,戏份很少,是个正面形象,经过化妆,完全看不出他的混混气痞子样。
演员塑造角色,一靠化妆,二靠表演,这两点做好了,就可以脱胎换骨。
本片相比于《鸣梁海战》,重在体现海战的排兵布阵,用CG呈现了波澜壮阔的上帝视角大场面海战(但可惜CG特效水准不行)。
但由于剧本有问题,本应很精彩的排兵布阵、敌我双方在战略战术上的斗智斗勇,却讲述得乱糟糟,只有其形,没有其实。
期待很高,失望很大。
海战主角龟战船很有意思,负责横冲直撞,在海战中起到了重要的扭转局面的作用,最后龟战船被围攻、开足火力四面开炮、瞬间歼敌的高潮戏,脑洞够大,娱乐性够强。
片名副标题“龙的出现”很差劲,直接剧透高潮戏,让高潮戏毫无惊喜,考虑到《鸣梁海战》的片名,本片作为李舜臣三部曲的第二部,显然应该叫做《闲山海战》最为理想,而且还能傍上《鸣梁海战》的大牌。
年轻
闲山岛大捷又称闲山岛海战,是1592年8月14日朝鲜与日军在闲山岛附近的一场重要海战。
朝鲜将领李舜臣的水军在此次海战中击沉63艘日船。
为了与朝鲜水师进行决战,日本水师在巨济岛一带集结,准备兵分三路向朝鲜水师发动进攻。
而李舜臣则将其全罗道的舰队和庆尚道的部分舰队组成联合舰队,准备迎战。
1592年7月6日,李舜臣进兵出唐浦附近水域,并于7月8日清晨,将集结于巨济岛的日本水师引至闲山岛附近水域决战。
李舜臣选择在此地决战是因为这里有著较为宽阔的深水环境,易于设置埋伏,可以向日本舰队进行包围歼灭。
1592年8月13日有平民回报说看到倭舰在巨济岛附近集结。
得到消息后的第二日清晨,李舜臣派出6艘板屋船去引诱日舰。
胁坂安治的海军见到板屋船后,马上追踪上来,一直追到闲山岛附近的广阔海域,与李舜臣的海军相遇。
在李舜臣与日军的前两次交锋中,李舜臣采用的是线型或圆型的连续式的进攻阵型。
虽然这种战术对于击溃敌方舰队很有效,但是也会让很大一部份的敌舰得以逃脱,这样无法有效消灭敌方军力。
为了克服这个缺点,李舜臣在此次海战中摆出了新型的鹤翼阵或称U型阵,意在不但要击溃日本舰队还要将之包围进而歼灭。
日军的战术是先派出快速的军舰突击然后迅速派出主力战舰靠近并登船。
日军的这种战术正中李舜臣的圈套。
朝鲜海军以鹤翼阵将接近的日舰包围住,舰上炮火从各个角度将被围的日舰摧毁。
战斗从早上一直打到傍晚。
在丧失了59艘战舰后,胁坂安治开始撤退,朝鲜水军获得大捷。
李舜臣事后在“见乃梁破倭状”中宣称击毁的日本舰队为大船36只、中船24只、小船13只、击破数63只,但是根据胁坂安治领地的石高算出的动员定数大约为1500人,这个战果数应当是过高了(次年5月日军攻击晋州城时胁坂军统计为900人,而且之前有相当一部分日军士兵回国休整,因此此战日军伤亡应较低)日本水师依然掌握着制海权。
朝鲜国王后来命令李舜臣主动攻击日军补给线,但被李舜臣拒绝。
这在日后也成为了李舜臣被撤职的一个主因。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7월 6일에 순신이 억기와 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與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6月21日 第四纪事비변사가 아뢰기를,"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 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싸움에 임해서는 수종(首從)이 있고 공에는 대소가 있는 것이어서 그 사이에 차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확실히 알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적을 벤 것으로써 대략을 논하면, 힘을 다하여 혈전했음에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시 1등에 참여된 이는 마땅히 별도로 포상을 하여야 할 듯합니다. 첨사(僉使) 김승룡(金勝龍), 현령(縣令) 기효근(奇孝謹)은 특별히 당상(堂上)에 올리고, 현감(縣監) 김준계(金遵階)는 3품으로 승서(陞敍)하고, 주부(主簿) 원전(元㙉)은 5품으로 승서하고, 우치적(禹致績) 등 4인은 6품으로 승서하고, 이효가(李孝可) 등 13인은 공에 맞는 관직을 제수하소서. 만호(萬戶) 한백록(韓百祿)은 전후 공이 가장 많은데 탄환을 맞은 뒤에도 나아가 싸우다가 싸움이 끝나고 오래지 아니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극히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니, 또한 당상(堂上)으로 추증하소서. 배지인(陪持人) 박치공(朴致恭)은 3급(級)을 베고 왜적 한 명을 사로잡았으니 6품으로 승서함이 어떠하겠습니까?"하니, 답하기를,"이에 의하여 조처해야 한다. 원균에게는 가자(加資)를 하지 않는가?"하였는데, 회계(回啓)하기를,"원균은 이미 높은 가자를 받았고 지금 이 전첩(戰捷)의 공은 이순신이 으뜸이므로 원균에게는 가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하였다.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8월 24일 2번째 기사備邊司啓曰: "慶尙道 元均獻捷啓本, 卽頃日李舜臣 閑山等島一時事也。
臨戰首從, 功之大小, 必有差等於其間。
而在此的知爲難。
以斬敵論大槪, 戮力血戰則無疑。
再參一等, 似當別爲褒賞。
僉使金勝龍、縣令奇孝謹特陞堂上, 縣監金遵階三品陞敍, 主簿元㙉五品陞敍, 禹致績等四人六品陞敍, 李孝可等十三人相當職除授。
萬戶韓百祿前後之功最多, 而至於中九之後進戰, 戰罷不久, 竟至於死。
極爲慘惻, 亦堂上追賜。
陪持人朴致恭斬三級、生擒一倭, 六品陞敍何如?" 答曰: "當依此爲之矣。
元均則不爲加資乎?" 回啓曰: "元均已受重加, 且今玆戰捷之功, 李舜臣爲主, 元均似不必加資矣。
"朝鲜王朝实录 宣祖实录 宣祖25年 8月21日 第二纪事其他影评的都讲错了,或者是精神有问题的碍国喷、🐶篮子之胡说十道。
我这才对当时历史的真实记录。
6分。
金汉珉编剧导演、朴海日主演作品。
可圈可点。
毕竟我大明王朝,郑和也下过西洋,但华语导演无一人可以拍出一场像模像样的海战。
倭国将领胁坂安治率舰队进入朝鲜,目标直指大明王朝的天津城,朝鲜皇帝吓得仓皇逃窜。
李水师李舜臣坚壁清野,誓死和胁坂一战。
双方终极之战不约而同选择在见梁海峡。
胁坂安治的策略是诱敌深入,围而歼之;李水使的策略是引蛇出洞,布好战阵,一网打尽。
胁坂安治的舰队数量惊人,战斗力爆表,而李水使有令海上不寒而栗的龟甲舰。
最终李水使凭借着惊人的冷静,耐心的等待,将胁坂安治的舰队引入阵中,尽数歼灭。
场面十分火爆,值回票价。
弱在细节的表现,比如海浪、天气、风速与人物的服饰甚至胡须的关系,比如船体破裂爆炸的细节等等都经不起推敲。
而大场景震撼之余,片中的文戏明显偏弱,战争不仅考验将领的谋略与勇敢,更要反思战争的残酷与失去的人性。
这恰好是许多战争片所缺失的。
万历年间的抗倭援朝战争是很提气的一场战争,我想在银幕上看到李如松、李如柏所率明军最后的神勇,想看到丰臣秀吉时代所谓将星如云的小西行长、藤堂高虎、九鬼嘉隆的狼狈溃败,想看到规模使用火炮的明军炮轰拿火枪穿竹甲的日寇……可惜我们的导演编剧忙着穿越和胡编乱造历史剧,逼得我只能拿韩国的片子当历史片来看了。
李舜臣的几场局部战役被韩国无限拔高,甚至阻止了日寇天津登陆的企图,挽救了大明。
这么任意打扮,熟悉历史的也就一笑了之,你怨不得别人,你自己不屑一顾,只能由着别人说呗!
彼时朝鲜的军制、武器基本和大明一致,语言文字也一致,韩国历史题材电影的服化道都比较认真,因此我也是当历史片来看,努力从韩国将领身上寻找中国历史印记,这不得不说是一个悲哀。
又想起国师的《满江红》,你尊重历史,好好拍个岳家军抗金、十二道金牌召回、风波亭,弘扬爱国主义,不好吗?
《鸣梁海战》里斩了个姓来岛的就能吹一整部电影,这个角色甚至在《太阁立志传》和《信长之野望》里都没出现过的,说穿了其实就是个杂兵大将。
然而朝鲜除了李舜臣以外,古代史甚至连一个能拿出来做下艺术加工的人物都找不出来了。
没办法,只能尬吹一下李舜臣了。
就连鸣梁海战,也是日本水师在调动的时候去屁股上偷一下刀。
闲山岛海战也一样,就是趁着日本水师调动的时候打打游记,打完了制海权还是在日本。
也实在是可怜阿。
听说花了不少预算,看来相当一部分花在了游戏美工上吗?
类似无人机航拍海上百艘旗舰大战的时候,还蛮壮观的,挺有感觉。
大致做到有点有面。
不过应该历史的考证不多,所以细节就无法太细。
不知道编剧尽力了没有,给男主将们的发挥空间挺小的感觉,常常就是凝重脸,沉静脸,坚毅脸,紧张脸,看起来没啥变化。
当然作为一个剧,还是有不少小段很像舞台剧。
比如那个女侍,咬掉牙毒以后流血昏迷几天,又可以送信又可以那啥了。
期待有史学大牛,借此来科普一番。
百艘战船,在500多年前,总司令怎么给各船长下命令,船长又怎么给每艘船的不同分工下不同的命令,这一个发,那边一个收,都挺有讲究吧。
其实吧,电影工业来说,应该要好好看看这部片的,但多半不能达到当年那种高票房了,原因可能不是没有当年的技术好,而是观众的期待值的问题。
预测后面的评论又是一通宇宙国呀,小渔船,村斗之类的,我觉得大可不必,历史方面先不说,电影工业来说的话韩国已经是亚洲最强各位没意见吧。
韩国现在是吸收了众家所长,自从近几年上一辈艺术类韩国导演作品变少以后,现在韩国影视几乎都是十分商业,但抵不住人家良性循环呀,如果喜欢过去那种艺术片口味的话,每年那么多商业片中还是可以挑出些颇具艺术气息的,为啥汤唯要嫁韩国导演,多半他也看出来了,我国内的影视氛围大概率出不了好作品,说来也悲哀,这并不是有没有钱的事情,我国影视行业从来都不缺钱,但是行业内的猫腻太多,也许电影体系里所有方面都是好的,但就是出不了好作品,就比如好导演.好编剧.好演员.全都集齐了,但演员拿走了60%,编剧1%,剩下的服道化只有5%,这样也绝对出不了好作品,遥望20年前韩国拍了很多那种屎尿屁的喜剧片,当时真的觉得很好笑,相信那些电影成本也不高,但人家就是出效果啊(比如任昌丁.崔成国之类的演员,可以看出人家演员的用力演出),所以,有时候看韩影真不该一味调笑人家,应该好好看看人家的演员.导演.编剧是如何“用心”在做自己的本职工作的。
就还是可以的吧。就不要说人家剽窃,好歹人家不要说兵器铠甲,连水战也都还原了。咱们大明呢?
嗯 原来是朝鲜阻止了日本入侵中国,棒子真敢拍
军盲表示还挺好看的,两边的服装看起来都十分精细,战斗的过程也比较思路清晰
就一个李舜臣,来来回回拍。
看了下地图 相当于在釜山外海一些小岛的战争 前段节奏很慢 战场上还行
又一部韩式自嗨的伪历史片,特效廉价,剧情浮夸。另,劣质字幕更是把观影体验降到最低
鸡肋了啊
这阻击了倭军向西进犯大明,也逆转了局势,原来是朝鲜保护了明朝,泪目了😅
输了是不是因为整个日本海军没有日本人。。。
韩国抗日主旋律大片。复原了闲山岛海战的全过程,龟船的还原度很高。李舜臣在韩被奉为民族英雄,印象中首尔市区还有其雕像。朴海日演的李舜臣太收敛了,沉稳冷静有余,而热情不足,不太符合我对民族英雄形象的想象。情节上两大亮点:一是围绕着高潮(海战)进行的缜密布局(双方间谍、计谋),二是(尤其是通过加藤这一角色)在爱国主义、民族主义的精神谱系基础上,将战争升华到了“义”的层面,脱离了简单的国家利益对立,转为具有一定普适性的共同价值。英文字幕对“义”的诠释局限在了战争的正义性上,实际影片表现出的是正义、伦理、(不分民族、阶级的)情义等多重内涵。另:机翻字幕看着太难受了,把Joseon翻译成约翰逊也是绝了。还好有官英字幕。
太流水账了,龟船出现前差点打瞌睡。导演一看就没少玩全战,可全战最不好玩的仗就是海战。我要不是为了省钱只舍得养弓小早整天以弱胜强放风筝,都不想手动去打它的海战。李将军依旧维持全版本面瘫模式,反正神化了的人物也只能拍到这种程度。这片子的看头确实在倭军一边,其实导演也比较喜欢拍日方吧,明眼人都能看得出。嘿嘿
意淫大於實際,動畫為主,沒有什麼看點。
李舜臣的存在感甚至不如那个变节的倭寇,场面活也挺一般
其实这部耀汉就是正常发挥,兹山鱼谱里的表现更值得获奖。朴海日是一点表情都没有啊……|看看横扫三大奖的男配到底啥水平
背景是“万历朝鲜战争”1592-1598,明朝投入人力,财力,把被灭国的朝鲜再度复国,对东北亚的局势,以及之后的历史都产生了推动作用。丰臣秀吉,德川家康,努尔哈赤各方势力都产生了很大的影响。……对于朝鲜就非常尴尬了,因为这场战争几乎和“抗美援朝”一模一样,从开战到谈判议和,到再次开战,到结束,几乎没朝鲜什么事。唯一拿得出手的,可以拍成电影的,就只有一个李舜臣,尴不尴尬?……本片取自“闲山岛海战”历史事件,此时明朝还没进入。这场胜利也被韩国无限放大,影片的艺术加工,已经篡改了历史和历史人物。……电影本身也不好看,远不如《鸣梁海战》。……《与神同行》的金香起长大了。
精彩
历史战争片最重要的张力只能给到70分,营造因素除了鼓点节奏和给人物拉近景就没了,作用是有但多了比较乏味。前半部分谍战中规中矩,对双方卧底的共情和投入度依靠一些有诗意的镜头调度和凌厉的剪辑增添不少,但提示有点过于明显也有些bug。海战部分依然着重于沉稳与进取的矛盾,没什么计谋的展现,这就给卞约汉的角色很大的发挥空间,在战略家和战士方面塑造的厚度比李舜臣多很多,演技也撑得住。另外不理解看惯这边主旋律的有什么好踩这部的,但凡把反派塑造得像个正常人也不会整天弄出些幼儿向的东西
场面4星 2倍速
鸣梁海战珠玉在前 这个相较差不是一星半点 这导演退步了
虽然2个多小时,但是一点也不拖沓,海战场面太好看了!!!“这是一场正义的战场,所有人抱着同一个信念而战。”;论别人的电影日语不用配音这件事。